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교사)
1. 들어가며
발제자의 발제 내용을 잘 읽었습니다. 내용에서 발제자가 제기한 문제들 중 상당수는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습니다.
먼저, 수능 개편안과 관련하여 탐구영역이 공통과목으로 축소가 되면서 교과 내용이 협소해지고 그 수준도 중학교 수준의 교과지식 정도라면 이러한 탐구 영역의 시험에 대해 상대평가를 실시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지적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봅니다. 또한 그 결과 상대적으로 커지는 국어와 수학의 영향력으로 인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있어서 파행의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점도 수긍이 갑니다.
다음으로 내신 개편안과 관련하여 상대평가의 존치는 결국 고교학점제를 무력화시키는 시도라는 점, 특히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하기 보다 많은 학생이 이수하는 과목을 다 같이 수강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은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입제도 관련하여 ‘9월 대학입시’라 할 수 있는 수시모집을 폐지할 것을 주장하는 내용에는 적극 찬성합니다.
이와 같은 기본적 시각을 공유하고 있음을 바탕으로 하여 아래의 논의를 토론 내용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2.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
발제자의 내용에 위에서 이야기한 바대로 수긍하는 점도 많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저는 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여기 계신 많은 분들, 가령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과 같은 모임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많이 다를 것입니다.
먼저 학교 교육에서 교사의 교육 행위와 대입의 문제를 조금은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제자의 글 중에서 ‘수능 중심의 대학 입시에서는 교사가 더 좋은 수업을 만들려고 노력할 이유가 없다’고 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는 실제로 제 시각에서는 다소 이상적인 문구로 들립니다.
학교 교육의 목표가 더 좋은 수업을 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할 수는 있지만, 그 ‘더 좋은 수업이란 무엇인가’는 교육 철학의 영역이며, 이는 매우 논쟁적인 (controversial) 영역이기도 합니다.
수업 뿐 만 아닙니다. 무엇이 더 좋은 평가인가 역시 매우 모호하고 논쟁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가령 두 역사교사가 있는데, A 교사가 B 교사에게 B교사가 낸 평가 문제에 대해 강하게 질타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A 교사는 B교사가 수능 문제 형식으로 문제를 내지 않고 (즉 다양한 삽화나 대화 문구, 일차 사료 활용 등을 하지 않고) B 교사의 문제 스타일이 교과서 본문 내용 자체에 치중하고 있는 점을 비판하며 그렇게 내면 안된다고 시험 문제에 대해 지적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요즘 일반계 고등학교 가령 1학년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은 한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 용어가 아닌) 국어 단어를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수업을 못따라가는 학생들이 많은 실정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실 B교사는 역사 서술 내용과 거기에 담긴 기본 지식을 강조하는 문제를 내었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역사 교육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세히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교사의 행동방식과 조건, 상황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자 든 예일 뿐입니다. 학교 교사는 대학교 교수와 달라서 동교과 교사들끼리 수업도 학년과 반을 달리 들어갈 뿐 함께 하고 시험 문제 출제도 함께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의 교무부의 시험 출제 연수에서는 항상 출제 교사들 사이의 협의를 강조합니다. 심지어 ‘방어적인 자세를 지양’할 것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결국 위의 B 교사는 동교 교사의 문제 제기에 압박감을 심하게 느낄 수밖에 없으며 타협하는 것 외에 방법은 없습니다. 학교에서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한 의지는 위에서 예로 든 동료교사 뿐 아니라 학부모로 부터, 또 더 나아가 학생들에 의해서도 계속 도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전이 또 부정적인 것만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혼란스럽고 논쟁적인 수업과 평가의 영역에서 진정으로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 자신이 계속 공부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능 시험이 없어진다고 교사가 더 좋은 수업을 하게 될거라고 저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의 교원 평가가 없어진다고 교사가 더 좋은 수업을 하게 될거라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공부하지 않는 교사도, 비도덕적이고 비전문가적인 교사도 얼마든지 수능시험이 있든 없든, 교원 평가가 있든 없든 살아 남습니다. 아니 공부하는 교사보다 더 떵떵거리고 잘 지내기도 합니다. 무지할 수록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 수 없으니 당연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교사가 더 좋은 수업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내신 개편안이나 수능 개편안 혹은 대입제도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결국 더 많이 공부한 교육자가, 정확히는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보다 성숙한 교육자가, 더 좋은 교육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문제는 교사의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고취시킬 수 있는 제도 개선과 보다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수능과 상대평가에 대해
그렇다면 학교 교육의 내실화, 혹은 정상화와 관련하여 오늘 대입제도 토론과 관련하여 남은 문제는 학생들이 어떻게 열심히 수업에 임하게 할 수 있을까입니다. 수능이 없어지면 학생들이 수업에 더 열심히 임하게 될까요? 즉 오로지 학교 내신 성적과 학생부 내용만으로 대입이 결정된다면 학교 교육은 정상화될 수 있을까요? 이 또한 매우 이상적인 주장입니다.
최근의 킬러 문항이 이슈화 되긴 했지만, 그 전부터, 특히 인강 시장에 거대 자본이 투하되기 시작한 이후, 수능 점수가 더이상 학생들과 대학 사이의 ‘학력시장’에서 가치(value) 확인을 위한 기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점을 저는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즉, 저도 현 수능의 한계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나 교육 전문가들은 왜 그럼에도 학부모들이 ‘그나마’ 수능에 의지하고 정시 확대를 원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사는 악마도 아니지만, 천사도 아닙니다. 위에서 결국 교사가 공부하는 만큼 좋은 수업을 하게 된다고 했지만, 대학교 교수직 처럼 연구 실적으로 승진하는 그런 체계도 없는 이상 현실적으로 정규 교사로 임용이 된 이후에 공부를 하면서 더 나은 교사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해야할 유인은 딱히 없습니다.
현재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김정호 경제학 교수가 작년에 낸 책인데 ‘학부모가 나서서 공교육을 뒤엎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공립은 사립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을 쓰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반대로 생각한다. 사립이 공립보다 훨씬 더 비싸다고 오해한다. 오해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대다수 사람들의 눈에는 당장 주머니에서 나가는 학부모 부담금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 공무원들이 공립 학교가 쓰고 있는 비용을 숨겨 놓은 채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130p)라고 통렬하게 공교육 현실을 비판합니다.
한 마디로 학부모들에게는 교사들이 제대로 안가르치고 놀고 먹으면서 점수 부풀리기나 할지 모르는 그런 상황, 그런 교사, 그런 학교에 대한 견제 장치로 그나마 인식되는 것이 (절대평가였던 학력고사처럼 점수로 반영되든 상대평가인 현재처럼 등급으로 반영되든) 국가 시험 제도의 존재인 것입니다. 정말 학부모들의 그런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교사들 모두가 수능 같은 시험의 존재 없이도 국가 수준의 성취도를 달성하기 위해 교실에서 (편하게 좋은 점수를 받으려는) 학생들의 요구와 타협하지 않고 꿋꿋히 수업행위를 할 수 있을까요?
학생들은 기왕이면 하기 싫은 공부 덜하면서 그래도 점수는 좋게 받고 싶어합니다. 음악, 미술 같은 과목과 달리 국, 영, 수 같은 과목에 대한 공부 그 자체에 흥미를 느껴서 학구열을 가지고 수업에 경청하는 학생이 한 반에 몇명이나 될까요? 그리고 교사라고 그런 학생들에게 수업 내용의 의미를 강조하며 철학을 가지고 매 시간 사투하듯 수업하는 대신, 적당히 타협을 보려는 유혹을 느끼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나요? 이미, 수행평가는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 내신 시험 문제들의 수준을 보면 교사들이 학생들과 타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자신이 언제나 옳고 자신은 잘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동물입니다. 수능이라는 최소한의 객관적인 기준 자체도 없어지면,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학생과 교사 사이의 타협으로 인한 교수활동의 질적 저하는 어떻게 견제할 수 있나요? 교사는 대학교 교수처럼 피어 리뷰(peer review)를 받으며 연구 업적을 쌓아 가야 하는 직업도 아닌데, 어떤 독립 기관이 고등학교 교사의 지적 수준과 교육 활동 수준에 대해 비판적 평가(critical review)를 할 수 있을까요?
학생들 역시 ‘너가 얼마나 공부를 객관적으로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알려주는 장치마저 없다면 자신들의 지적 수준에 대한 그 어떤 겸손도 배울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졸업하게 됩니다. 어찌됐든 교실에서 잠만 자도 졸업은 할 수있으니까요. 그저 자신들을 붙잡아 놓고 공부시킨 학교에 불평 불만을 쏟아낼 뿐, 자신에게 혹시 문제가 있지 않나 깨달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사회에 나가게 되는 것이죠.
수능 뿐 아니라 상대평가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교육전문가들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를 하면, 즉 교사에게, 그리고 학교에게 더 많은 자율권을 주면, 학교 교육은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직 교사로 일하는 저에게 이는 매우 이상적인 주장으로 들립니다.
최근에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된 학교 문제가 시사하듯, 저는 지금의 학교 현실은 학교가 학생에게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파적인 시각에서는 학생 인권이 강조된 결과라고 말하고 좌파적인 시각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서비스 개념이 강조된 결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학교는 공부를 하는 곳이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조차 관철시키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오늘 발제자는 ‘결국 학력 저하 문제의 대책은 학생부에서 찾아야 한다’라고 적었지만, 저는 동의하기 힘듦니다. 정말 그런가요? 교사들이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사들이 입력하는 학생부의 내용이 정말 객관성이 있는 내용인가요? 누가 검증할 수있나요? 여기는 한국입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미국처럼 개인주의적 성격을 토대로 하기보다, 담임 교사가 부모처럼 자기 반 학생들 대학 ‘보내는’ 것에 전심전력을 기울이기를 바라는 정서가 사회적으로 팽배해 있습니다.
어느 교사가 학생부 내용이 모두 공개되는 마당에 학생들, 학부모들 눈치를 보지 않고 칭찬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자유로운 학생부 기록을 할 수 있나요? 또한, 절대 평가에서 내가 가르친 교과의 점수와 등급이 낮게 나온 학생들이 만약에 내가 부여한 점수와 등급 때문에 대학에 떨어지게 생겼다고 말한다면 어느 교사가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고 평가를 할 수 있을까요? 절대평가는 교사를, 학교를 더욱더 학생과 학부모에 끌려가게 만들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애초에 수능이 현재처럼 신뢰성과 타당성을 상실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수능 시험에서 학생들이 선택할 수있는 과목 수가 늘어난 이래 학생들이 정말 자신의 소질과 꿈을 토대로 탐구 과목을 선택하고 있나요? 특정 대학이 가지는 비전에 공감해서 지원하기 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전형의 대학을 골라 지원하고 있는 현실과 마찬가지로, 수능 과목에 있어서도 학생들은 그저 높은 등급을 받기 쉬운 과목을 선택할 뿐입니다. 사실 킬러 문항이 문제가 되고, 수능의 신뢰성과 타당성이 심하게 퇴화된 것은 학생의 잘못도 학원의 잘못도 아닙니다. 정부가 교육학적 명분을 내세우며 선택과목 수를 늘리는 바람에 좁은 범위의 내용 영역을 상대평가하려다 보니 나타난 자연스런 결과일 뿐입니다. 좋은 의도가 안좋은 결과를 초래한 그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입니다.
4. 맺으며
수능의 선택과목 수를 계속 늘렸었던 과거의 모습처럼, 수능을 없애는 것,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돌리는 것.. 명분은 좋고 의도는 좋지만, 과연 그것이 학교 교육을 내실화하고 정상화할 수 있을거라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런 이상적인 주장들 앞에서 정작 교사들은 자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전문직업적 자율성 (professional autonomy)을 당당히 요구할 수있을 만큼의 지적, 도덕적 수준의 교육 행위를 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나요? 교사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교사는 천사가 아니기에, 그리고 학생도 천사가 아니기에,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교육 활동을 객관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그리고 학생들의 학습 활동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절대 권력이 절대부패하듯 교육 활동도 저질화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합니다.
학생 역시도 유급이나 낙제가 없는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수능까지 없다면, 그리고 상대평가도 아닌 절대평가를 한다면,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의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이미 과거에 비해 한국의 고등학생들 중에는 그런 인격을 가진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성과 도덕성은 나의 객관적인 수준과 위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학인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합니다.
대입의 측면에서 학력시장은 선도 악도 아니고, 학생이 대학을 선택하고 대학이 학생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 학력 시장이 대입제도 속에서 과열되거나 변질 되지 않고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자신만의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장이 되도록 학교 교육과정과 대입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관련 유튜브: EBS 뉴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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