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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Baeminteacher

교사가 본 한국 공교육의 이중성


From Yangwha bridge, July 2020





-학생들은 공부를 ‘정석대로’ 혹은 ‘제대로’ 하기를 거부한다. 즉 책을 (교과서를) 읽지 않는다

-소통과 협력을 강조하는 ‘열린 교실’ ‘혁신 학교’ 등 다양한 학교 수업 모델로 입시를 준비해

-학교교육 역할은 체험활동 위주의 놀이터인 것도, 입시에 종속된 사교육과의 경쟁도 아니다

학생들이 책을 멀리하면서, 오직 창의적 체험활동 등으로 입시를 준비한다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고등학교 역사교사로서 늘 보는 학생들의 모습이지만 언제나 내 눈에는 정상이 아닌, 이상하게 보이는 모습이 있다. 학생들은 공부를 ‘정석대로’ 혹은 ‘제대로’ 하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이다.

즉, 책을 (교과서를) 읽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책보다는 체험으로 학습하는 습관이 들어서 일 수도 있고 소위 협력과 나눔 학습에 길들여져서 일 수도 있으나, 글을 잘 읽지 않으면서 지식과 생각을 어떻게 나눌 것이며 무슨 창의적인 발표나 활동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모든 지식은 글의 형태로 기록되고 공유되며 검증된다. 기억의 메커니즘이나 뇌의 정보 처리 양상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수많은 교육학 이론이 난립해 있고, 소통과 협력을 강조하는 교육철학 방향을 따라 ‘열린 교실’에 이어 ‘혁신 학교’ 등 뭔가 참신해 보이는 label로 포장된 다양한 학교 수업 모델이 존재하지만, 이는 피상적인 개념이나 형식일 뿐이다.

무슨 과목을 공부하든 글을 제대로 읽고 사고하는 습관을 가지지 않고서는 고등학교에서 제대로 된 학습 과정을 수행하기 쉽지 않다. 하물며 대학교에 갈 요량으로 입시 준비를 한다는 것은 수학능력을 키우는 것과 동일한 의미인데, 읽기 능력이 부족한 학생이 책을 멀리하면서, 오직 창의적 체험활동 등으로 입시를 준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함에도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은 학생들은 참고서를 줄치고 외우거나 문제집을 풀거나 동영상 강의는 열심히 듣지만, 정작 교과서를 정독하는 경우는 드물다. 학원 강사들의 동영상 강의는 대부분 참고서를 중심으로 하여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문제를 잘 푸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많은 학생들의 머리 속엔 애초부터 무엇이 제대로 된 공부인지에 대한 의식 자체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역사 과목처럼 심지어 인문학 교과목에서조차 교과서는 흔히 찬 밥 신세이다. 대부분의 한국 고등학생들은 역사 텍스트의 독해reading보다는 기출문제 유형을 모방한 문제들을 끝도 없이 풀어 대는 연습을 통해 수능시험 문제풀이 기계가 되어가는 모습이다.

즉, 학생들은 역사를 공부한다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충실히 이해하거나 (교과서 저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체계적인 사고 능력’이나 ‘비판적 인식 태도’, ‘다양한 생각에 대한 포용적인 자세’ 등을 익히려는 모습을 보긴 힘들다. 교육학 이론가들의 갖가지 (주로 흥미 유발과 협동 학습에 초점을 맞춘) 수업방법론들은 인문학 텍스트의 정독이 가지는 전통적인 학습의 중요성이 간과되는 현실에서 역사 학습에 큰 의미를 갖긴 힘들 것이다.



공교육의 이중성, 정부는 경쟁을 막자고 하지만 학교는 입시 기관화


학생들을 이렇게 만든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공교육의 이중성(정부는 경쟁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고 학교는 입시 기관화하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 학종(학생부 종합전형)과 같은 수시전형의 비중을 높이자는 주장은 지금까지 늘 정시전형, 즉 소위 ‘시험 성적으로 학생을 줄 세우는’ 입시 체제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하여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간과하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정시(수능시험)에 대한 교사들의 잘못된 인식과 이해이다. 흔히 얘기하는 한국사회의 ‘입시에 대한 문제’들도 그 본질을 잘 생각해보면, 공교육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정부, 교사, 학생 모두의 인식과 철학의 부재가 문제이지, 학력고사든 수능시험이든 신뢰도를 기반으로 하는 시험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보긴 힘들다.

예전 연구수업을 했던 때가 기억난다. 고3 한국사 수업에서 고대의 과학사와 정치사를 연계시킨 내용으로 교과서 내용을 재구조화해 수업을 했었다. 학생들에게 고대 과학에서 중요한 특징이 무엇이었는지, 고대의 정치에서 중요한 특징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왜 중요한가를 다루는 수업이었는데, 강평회에서 한 교사가 그 내용은 ‘시험에도 잘 안 나오는’ 중요하지 않은 부분인데 왜 연구수업의 주제로 잡았는지를 내게 물었었다.

하지만, 고3 수업이라 할지라도 수능 위주로 문제풀이 대비를 위한 수업을 하는 것이 과연 학생 개인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된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가령 역사 수업은 오로지 역사 수능 문제 풀이에만 도움이 되게 행해질 수도 있지만, 인문사회과학적 사고력의 향상이 일어나도록 행해질 수 있다면 기타 다른 교과목 및 수시 대비에도 전반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단순히 어떤 수업의 효과를 그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수능 점수로만 평가한다면 이는 분절적 분석의 한계를 보일 뿐이다. 만일 학교 시험도 정시 대비 수능 유형으로 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면 아무 고민 없이 기출 모의고사 문제들을 일부 변형시킨 짝퉁 문제들이 버젓이 학교 문제 출제의 표준이 되는 파행이 나타날 수도 있다.

교실 수업과 평가에서 존재하는 이러한 논쟁적 사안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입시 교육 문제와 관련한 비난의 화살 및 관심의 초점은 늘 ‘시험과 경쟁’으로 향한다. 하지만 시험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입시에 종속된 학교 시험은 바람직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가르친 것을 확인하는 시험은 중요하며 필수적이다. 학교에서 학생을 ‘경쟁시키는 교육’을 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교사로서의 전문직업성에 바탕을 둔 내 교육 철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쟁이 불필요하게 과열되지 않도록, 무의미한 경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경쟁이 공정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이지, 경쟁을 없앨 수 있는 교육은 이상적으로는 존재해도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from <제3의길>

공교육의 역할이 ‘경쟁을 없애는 교육’의 장이 되는 것인 양


사교육의 본질이 학생이 경쟁에서 이기도록 돕는 것이라 할지라도, 사교육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공교육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제대로 확립되는 것이 우선이다. 수능 시험 도입 이후 교육부의 교과과정 개선과 교수학습의 방향 정립을 위한 노력은 인정할 만했다.

단순 암기 위주가 아닌 사고력 배양을 지향하는 수업은 진작에 이루어져야 했던 것이었고 고교 학점제와 같은 교사의 수업과 평가 전체에 일관된 전문성을 도모하는 정책의 시도는 수긍할 만한 것이었다. 문제는 정부가 지금껏 공교육의 역할이 마치 ‘경쟁을 없애는 교육’의 장이 되는 것인 양 정책을 펼쳐왔다는 점에 있다.

그런가 하면 현실의 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의 모습은 학교가 학원인 양 학생들을 입시 준비시키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러니 학원 강사보다 학교 교사의 전문직업성 professionalism이 더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전문과를 진료하는 의사 진단도 데이터에 기반한 A.I.의 정확성에 점차 의지하게 될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드는데, 학교 교사들이 기업화된 대형 전문 입시기관들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실제로 대학 응시원서에 담임 교사의 도장이 요구되던 과거에 비하면 입시에서 교사의 역할은 이론적으로는 감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인식 탓인지 많은 교사들이 아직도 입시에서 자신이 학생에게 도와줄 것이 많다고 착각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사가 입시와 관련해서 학생을 어떻게 ‘도와야 한다는’ 것인가? 사실 그 발상 자체의 문제를 많은 교사들이 느끼지 못한다. 만약 교사가 그런 식으로 학생 개인의 입시 준비에 담임 교사로서, 교과목 교사로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한다면, 학생부는 이상한 문서가 되어버리며,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해볼 때 그 자체로 학생들의 경쟁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지금 한국의 학력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실재 상황이다.

애당초 학생의 학습과 체험 과정에 대해 성적 외에 다른 부분이 입시에 활용되는 경우 한국과 같은 학벌 위주 사회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입시는 그 본질이 경쟁이기에, 성적 외의 부분을 교사가 아무리 객관적으로 기술한다고 하여도, 그 기술된 내용 자체가 경쟁이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객관적 평가’ 자료로서의 가치를 담보할 수 있을까?

가령 누구도 외향적인 성격이 내성적인 성격에 비해 더 바람직한 성격이라 말할 수 없겠지만, 수시에서 유리한 성격과 행동 패턴은 굳이 교사가, 학원 컨설턴트들이 강연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스스로 느낀다. 즉, 학생부를 기반으로 하는 평가는 다분히 인격 재판의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개인적 관계 요소가 자연히 포함될 수밖에 없다.

공교육, 즉 학교교육의 역할은 체험활동 위주의 놀이터가 되는 것도 아니고 입시에 종속된 사교육과의 경쟁도 아니다. 학생들이 제대로 학습과 체험을 하도록 인도하고, 공정하고 신뢰도 높은 평가를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 간의 ‘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정책입안자와 학교교사가 가진 공교육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오해와 착각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그 어떤 교육정책이나 입시정책도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








제3의길 기고: 제3의길 105호 [2020년 8월 18일] 게재 기사

해당 기사 링크: http://road3.kr/?p=35523&cat=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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