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구한말과 대한제국의 패망사”에 관한 토론
배민 (숭의여고 역사교사)
발제하신 김용삼 대기자는 동아출판, 천재교육, 금성출판사 3곳의 교과서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현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구한말~대한제국 시기를 분석하고 있다.
1.
이중 먼저 첫 번째 시기인 ‘서구 열강의 접근과 조선의 대응’ 부분은 개항 전 19세기 후반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위정척사 정책이 외교 정책의 주를 이루는 시기였는데 당시 국내에 배타적인 양반 집단의 정세 인식을 발제자가 잘 지적하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외교 정책의 본질은 국내 정치의 연장선이었다. 국제 정세 따위는 정부 관리들도, 지방의 유생들도 알 바 아니었던 것은 비단 구한말 뿐 아니라 어쩌면 지금 현재에도 적용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2.
두 번째 시기인 ‘동아시아의 변화와 근대적 개혁의 추진’ 부분은 개항 후 청일전쟁 직전 시기까지의 내용인데, 발제자는 여기서도 교과서의 왜곡된 내용에 대해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다. 정한론 논쟁을 초래한 조선과 일본의 외교 관계 마찰의 본질은 조선이 청의 속방이었다는 사실에 있지 않나 싶다. 자꾸만 현행, 그리고 기존의 한국사 교과서들은 일관되게 민족 자존심을 드높이려는 목적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이 분명한 구한말의 대전제를 감추어 왔다. 그 결과 학생들은 구한말의 역사를 역사적 시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의 시각으로 접근하며 일본, 청, 러시아, 미국에 대비해 조선의 당시 현실적인 정황을 인식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비단 이 부분 뿐은 아니겠으나, 한국사 교과서에서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있어 무책임하게 회피하는 모습은 분명히 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화도 조약이 불평등 조약이었다는 내용은 특히 구한말 교과서 부분 중에서 가장 본질적으로 왜곡된 표현이 아닐까 한다.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위에서 말한 청의 속국이었음을 감안하면 오히려 독립국으로서 더 평등한 지위를 비로소 보장 받게 된 결과를 가져온 것이 진실에 가깝다. 진실은 불평등 조약이라기보다 불리한 조약이었다. 그리고 이 결과는 발제자가 정확히 지적했듯, 조선의 외교적 무지가 그 원인이었다. 이후 이어지는 조선과 서구 열강들과의 수교는 전형적으로 청이 속국인 조선을 어떻게 요리하여 자신의 주도권을 가져가려 했는지를 잘 보여주는데, 이 역시 현행 교과서는 일절 청에 불리한 내용을 드러내지 않고 은폐하고 있다. 현대사 (대한민국사)에서는 조금이라도 정부에 의한, 특히 자유당 정부와 군인 정부 시절의 정책에 의해 민간인이 다치거나 죽게 된 아픈 과거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 난 한국사 교과서가 왜 구한말에 청에 의해 비참하게 외교적으로 끌려 다녔던 과거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이토록 노력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은폐는 매우 선별적으로 일어난다. 일본에 의한 손해나 피해는 실제보다 더 과장하여 드러내며 청의 경우는 그 반대이다. 구한말뿐이 아니라 이는 한국사 근현대사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서술 원칙인 듯하다. 이를 편파적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무엇에 대해 편파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신기하게 영국에 대해서는 오히려 매우 중립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아니 서술을 매우 아끼는 듯한 모습이다. 이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19세기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의 동아시아 외교 전략의 큰 틀을 기술하지 않고 구한말 역사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기 때문이다. 국제 관계를 정의와 불의, 선악 구도 보다는 각국이 어떠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구한말의 조선은 그 속에서 어떤 이해관계를 추구해야 했을까를 좀더 냉철하게 바라보도록 하는 교과서 내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3.
발제자의 발제 내용 중 세 번째 시기인 ‘근대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 부분은 청일 전쟁부터 대한제국 수립 시기까지의 부분이다. 구한말에서 가장 슬프도록 한심한 느낌이 들게 하는 부분이 이 시기인데, 이미 크리티컬 타임(개항부터 청일전쟁까지)을 허송세월로 보낸 조선이 뒤늦게 그것도 한물간 러시아식 전제정치로 새로이 도약하고자 하는 잘못된 방향의 개혁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발제자도 지적했듯, 특히 일본으로의 쌀 수출과 관련된 교과서의 서술 내용은 경제사를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고 서술하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또한 동학 농민 운동 역시 발제자의 시각처럼 실제보다 이상화되고 과잉 의미 부여된 대표적인 부분이라 생각된다.
4.
네 번째 시기인 ‘일본의 침략 확대와 국권 수호 운동’ 부분은 대한제국 수립 이후부터 한일 합방 시기까지이다. 사실상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로 한국의 상황은 거의 이전까지 경쟁 관계였던 모든 긴장 관계가 해소되고 일본이 한국에서 발제자가 표현한 대로 ‘우월한 이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전까지의 모든 개혁을 위한 기회를 허송세월로 날리고 이제 와서 조선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는 극히 제한적이 되었는데, 현행 한국사 교과서는 이러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보다는 발제자가 지적한 대로 ‘가짜 뉴스’를 근거로 당시 상황을 지속해서 은폐하고 있다. 언제까지 학생들이 그러한, 사실과 거리가 먼 역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을사늑약, 한일 병합 조약의 무효에 집착하는 역사 인식을 지속해 나가도록 방치할 것인가.
이후 이어지는 의병 관련 교과서 서술도 팩트에 기술한 서술이라기보다 동학농민운동이나 한일합방 조약에 관한 서술처럼 우상화, 영웅화, 이상화 등의 과잉 의미 부여로 점철된 내용이 되어 있다. 일본은 강자이자 악한 나라이며 조선은 약하고 선한 나라라는 도식적인 이분법으로 한국사 교과서 서술은 역사 서술이라기보다 자기 연민의 소설에 가까운 내용이 되어 버린다.
5.
경제사 부분에서 발제자가 잘 지적하고 있듯 가장 불평등 조약은 청과 맺은 조약이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구한말 서술은 이 점만 보더라도 명명백백하게 반일 친중의 편파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거기에 더해 조선 및 대한제국 정부의 무능한 경제 및 외교정책에 대한 내용은 청나라에 대한 내용보다 더 철저하게 은폐하고 있다. 조선은 약하고 선한 나라라는 도식은 이로써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 가는 모습이 구한말 서술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6.
발제자가 정리한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 부분은 앞으로 현재의 교과서를 어떤 식으로 수정해 나가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발제자가 지적한 부분 중 역사적 사실 자체를 잘못 기술하고 있는, 즉 역사 기술에 있어서의 오류 내용은 시급히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반일 친중의 편파적인 서술 양태는 좀 더 이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공론화시킬 필요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발제가가 마지막으로 지적한 ‘조선의 멸망에 대해 말하지 않는’ 한국사 교과서의 모습이다. 이 부분에 대해 발제자보다도 개인적으로 나는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왜냐 하면 이 부분이 모호하게 서술되어 있기에 일제 시대 한국사 서술에서 한국인이 일제에 의해 수탈당한 역사라는 서사가 굳건하게 기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국, 반공 등을 외치는 자칭 우파 시민들 상당수 역시 일제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착각과 환상에 빠져 있음을 보게 된다. 조선 사회 안에서 양반 집단과 정부 관리들에 의해 받은 진정한 착취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서술 탓으로 그들은 착한 한국인들이 나쁜 일본인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했다는 단순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일제의 지배 정책은 사실상 착취라기보다는 동화가 그 본질이었다. 오히려 진정한 착취와 수탈 관계는 일제 시대의 한국인과 일본인의 관계였다기 보다는 그 이전 19세기 조선 사회 속 양반와 농민의 관계였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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