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나는 그간의 경험 (치과의사, 교사, 인문의학과 의학사 연구 등) 때문에 역사교사치고는 꽤 다양한 학문 영역을 지금껏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공부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와 사고의 한계를 직시하고 이를 극복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공부를 하면서 내 자신이 분명 변화된 모습이라면, 어떤 현상이나 대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 원인과 본질에 대해 심도 있는 이해를 시도하는 태도를 가지게 된 점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내 자신의 논리에 대해 언제나 의심해보고 나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어떠한 이유로 그러한 견해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태도를 가지게 된 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근무하는 학교에서 갈수록 말이 없어지게 되었다.
원래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긴 했지만, 내 말을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를 듣는데 더 중점을 두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결과이기도 했다.
교사로서 내 모습은 딱히 학교에서 주목받는 교사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교사로서의 전문직업성(educational professionalism)에 충실하게 일해나가고자 노력해왔다. 그래서 교육청이나 학교 등의 외부에서 부여되는 규칙이나 지침보다는 나 자신 내부의 원칙과 철학을 바탕으로 일해왔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끝없이 성장하고 변화해 나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교사로서 더 나은 존재 (better self)가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내 자신을 내가 돌아보았을 때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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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교사로서 살아가고자 하는가?
교사로서 일하면서 내가 가진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한 가지는 내 개인적인 역사교사로서의 전문직업성을 키우고자 하는 목표이다.
주어진 일, 그리고 처해진 상황에 안주하여 별다른 노력 없이 관성으로 일하기 보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이를 통해 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이러한 개인적인 목표와 더불어, 다른 하나의 (사화적) 목표는 의료계와 역사학계의 발전에 각각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점점 의료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는 중요하게 대두할 것이다.
그래서 의료에 관한 사회적 논의들(social discourses)이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활발하게 논의된다면, 내가 가진 하찮은 능력으로라도 그러한 논의에 기여해보고 싶다. 이는 궁극적으로 한국 의료계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역사학계의 경우도 학생 수 감소 및 연구자 수 감소로 말미암아 자칫 침체되어질 수 있는 상황인데, 이런 상황이 오히려 교사와 같은 많은 새로운 구성원들을 역사학계의 학문 발전에 동참시키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고교 교사로서 교실 안에서 학생들을 위한 주어진 내용의 충실한 수업뿐 아니라 나의 연구 활동을 통해 역사학 내용의 전문화와 심화 등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특히 문과와 이과, 역사와 의학, 동양사와 서양사, 전근대 의학 및 현대 의학 등으로 단절되고 분절되어 발전해온 각 영역 간의 소통과 융합을 추구하는데 내가 가진 다양한 이력을 바탕으로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그런 교사로서의 연구 활동을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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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연구한 역사학 내용은?
역사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아직 역사학에 대해 배울 것이 무수히 많다.
역사학 내용 중에서 나의 주 관심사는 특히 의학사(the history of medicine)와 관련해 철학과 문학, 의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자연과 인간의 관계’이다.
흔히 동양에서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서 전체론적(holistic)으로 이해하고 서양에서는 자연이나 인간의 몸을 세분화된 하위요소들의 기능과 상호작용으로서 환원론적(reductionist)으로 이해해왔다는 생각이 역사적, 철학적으로 보편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 관념을 넘어서 서양의학사에서의 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당대 의료인들의 시각이 어떻게 근대에 와서 변화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나의 주된 관심 주제였다.
지금까지 내가 연구한 바로는, 가령 19세기 중·후반 영국에서 위생(hygiene)이라는 관념은 그러한 주제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었다.
위생의 개념 자체는 19세기 내내 의학사적으로나 사회사적으로 볼 때 극히 복잡하고 현란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특히 자연치유 철학(nature cure philosophy) 혹은 자연치유력(healing power of nature)에 대한 19세기 관념이 위생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 관념은 19세기 전반기 유럽 낭만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도 했으며 당시 사회적으로 대중적인 큰 인기를 끌었던 만큼, 당시 적지 않은 의사들 이러한 관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시 영국과 미국에서 유행하던 이러한 자연주의적 관념을 가진 의사들(미국의 의학사가인 J. H. Warner의 표현을 빌자면 ‘nature-trusting doctors’)은 자신들의 이론이 훨씬 진보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것이라 생각했고,경쟁관계에 있던 권위적 주류의학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자연주의적 의학 관념을 medical reform의 주된 이슈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moral reform, institutional reform 등 온갖 사회적 ‘reform’이 주 화두였던 19세기 영국 사회에 대한 그러한 의철학적 주제는 사회사적인 의미를 의학사에 접목하는 좋은 연결고리이기도 했다.
위와 같은 연구를 통해 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근대 의료인의 생각이 특히 19세기에 어떻게 변화해 나가게 되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탐색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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