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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Baeminteacher

드라마에 투영된 입시경쟁과 교사의 시각


[사진=tvN 블랙독 공식홈페이지]



시장의 원리로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거부감부터 가진다. 의료와 더불어 교육은 전통적으로 공공성이 강조되고 있는 영역이며, 나자신도 지금 어떤 의미에서는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에 내 직업을 걸고 일하는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교실 현장에서 보여지는 교사와 학생의 두 학교주체를 이어주는 수업과 면담 등의 학교 활동들에 있어서, 얼마나 총체적인 공공성이 담보되고 있는 가이다.


마치 한국의 건강 보험제도가 단지 민간 병원의 의료비 할인제도에 지나지 않는 제도가 되어버렸다는 비판처럼, 한국의 학교 교육 역시 단지 학원 강의와 사설 입시 컨설팅의 저렴한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더 나아가 수시 입시제도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불신의 시각을 받는 상황을 근래의 TV드라마들이 보여주기도 하였다. 가장 많은 경제적 자원을 소모하는 한국의 공공 부문 중 하나인 학교 교육 제도가 가지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교육의 공공재적 성격과 관련한 논쟁에서, ‘나는 교육만 바라볼 것이고 정치, 경제에는 관심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교육 체제는 정치적 시각과 철학, 전략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란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 집단에 국한된 차원으로 협소하게 볼 수도 있지만, 의료와 교육 등 사회 전체적인 차원으로 보자면, 근본적인 사회적 시각의 차이와 맞물려 있다.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좌파적 시각은 대체적으로 자본주의적 사회체제가 인간을 '억압' 과 '착취' 관계로 내몬다고 바라보며, 이러한 관점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 계급의 보호를 우선한다.  반면, 우파적 시각은 사회를 가치에 대한 '선택'과 (가치 상승을 위한) '경쟁'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공정하고 엄격한 룰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실제로 억압과 착취는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기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권력 행사에 대한 욕망 (수평적인 개인간의 존중보다 수직적인 위계 서열의 확립을 선호하는)과 관련된, 현실적으로 도덕성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인들 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주의 사회와는 작동 방식이 다른, 학교 교실 공동체 내부에서도 학생들은 왕따나 은따와 같은 집단주의적 권력관계에 기반한 폭력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규제 및 노동자 (약자) 보호를 강조하는 친사회주의적 시각은 전세계적으로 학계와 교육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특히 한국 사회의 교육자 중에서 입시 경쟁과 학력시장을 자연스러운 경제학적 현상으로서 중립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까지 한국의 학생들은 ‘입시 지옥’에서 고통받는 대상이자, 그런 이유로 입시제도 개선을 통해 사회가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대부분의 교사들 역시 대학 입시를 교육시장의 원리로 접근하는 시각에 낯설어 한다. 특히 과거의 지필고사 일변도의 입시체계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대한민국 교육정책이 지난 30여년간 걸어온 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상적인’, ‘모두가 함께 하는’, ‘인간적인’ 등의 수사가 ‘시장의 원리’를 강조하는 우파적 시각에 대한 강력한 대안으로 기능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도 영미식 대학 입시 자율 정책과 함께 뒤죽박죽으로 기능해온 채로. 그 결과 부동산 세금 정책만큼이나 대학 입시제도는 예측이 불가한 복잡한 아노미 상태에 놓여 있다.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교육에서 시장의 원리, 시장의 영역을 외면해왔다. 하지만, 현실 속의 학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더 ‘높은 사회적 인지도를 가지는’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과거에도 경쟁했고, 지금도 경쟁하고 있고, 미래에도 경쟁할 것이다. 학생 개인의 자연스런 욕망이 초래하는 학력시장의 존재인 것이다. 이렇듯 공정한 경쟁을 기대하는 정직한 학생과 (학생들이 어른들이 만든 지옥 같은 입시 현실에서 희생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선량한 교육자 사이의 어긋난 시각 사이에 발생하는 가장 희극적 포인트는 바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자신의 학교 학생들을 더 좋은 대학에 보다 많이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학생들을 위한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는 고등학교 교사들의 존재이다. 이러한 모습은 멀리 갈 것 없이 최근에 종영한 ‘블랙 독 (Black Dog)’이란 TV 드라마를 통해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드라마 블랙 독이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던 교사의 모습은 학생들이 입시지옥에서 고통받는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입시 경쟁 조장에 학부모만큼이나, 아니 학부모 된 심정으로 혁혁한 역할을 하는 고등학교 교사의 모습이다.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는 스스로 공공성을 외면해온 한국 공교육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가령 그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에서, 모든 교사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드라마 주인공 중 한 명인 진학부장이 ‘우리 애들’을 위한 학교 교사들의 근본 문제를 거론하며 열변을 토하고, 잔잔한 감흥을 돋우는 배경음악과 함께 ‘우리들 중 누군가는 이 불편한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고 비장한 내레이션이 나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에피소드의 주제는 결국 그 학교가 (드라마 속에서 모든 학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한국대학교에 더 많은 학생을 보내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이지 우리나라 교육의 불편한 진실이나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 드라마 속 교사들의 학생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모습은 엄격한 재판관이라기보다 고객의 편에 선 변호사의 태도에 가깝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교의 입학사정관을 학교로 성대하게 초대하여 학종(학생부 종합 전형)을 대비한 귀중한 입시정보를 얻어내려 노력하는 드라마 속 학교의 모습은 고등학교의 사명이 학생을 더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의 충실한 반영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공부에 흥미가 없어도 자연히 그 다음 순서는 대학진학이라는 생각이 보편화된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자신의 학생을 간절히 더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교사들이 쓴 생활기록부가 대학 입시에서 얼마나 객관적인 검증 자료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또한 그 드라마에서처럼 EBS 교재와 기출 문제 위주의 수능시험 대비에 초점을 맞추어 수업과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탐구와 사고력 위주의 교과 과정 및 평가 체계 개편에 교육부가 지금까지 천문학 돈을 쏟아왔으나 실제로 학교 교육은 사교육의 학원 강의와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를 가질까?


그런데 생활기록부의 공정한 작성의 문제, 수능 시험 문제 풀이에 경도된 수업의 문제 등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 드라마 속 교사들과 같은 (자신의 학생을 더 좋은 대학에 보내고자 하는) 사명감에 사로잡힌 교사들의 노고가 전국적으로 볼 때는 학생들 간의 입시경쟁을 필요이상으로 과열시키게 된다는 점이다. 입시경쟁과 교육시장의 존재를 긍정하자는 것과, 교사에 의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사명감으로 말미암아) 전국적인 입시경쟁이 필요이상으로 과열되는 것은 전연 별개이다. 사교육은 나쁜 것이며 이를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억제해야 한다는 정치사회적 시도와 내 자식은 그럼에도 비싼 학원 수업을 받게 하고픈 부모들의 한결같은 욕심 사이의 근본적 모순만큼이나 한국 교육에서의 모순된 모습은, 입시 경쟁에 내몰리는 학생을 측은히 여기면서도 입시경쟁의 과열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동참하는 드라마 속 교사들과 같은 모습이다.


학교 교육의 공공성은 드라마 블랙 독에서처럼, ‘나는 학생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아’라는 고지전 병사와 같은 결기가 아니라, 교육시장을 수긍하고 ‘나는 학생들을 공정하게 대하겠다’는 (전문직업성에 바탕을 둔) professional distanc에 의해 오히려 더 잘 지켜질 수 있다. 그 드라마에서 진학부장이 학교에 성적이 우수한 한 학생의 성적을 외우고 있어서 그 학부모의 요란하고도 즉흥적인 학교 방문에도 침착하게 진학부장으로서의 자신의 전문성을 어필하며 대처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그가 전교생의 모든 성적을 머리 속에서 외우고 있지 않은 한 해서는 안되는 짓이다. 현실에서는 주인공 학생과 엑스트라 학생이 따로 존재해서는 안된다.


교육부는 학종과 같은 (교사가 객관적이고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엄정하게 관찰 기록한 학생의 성장과 노력 과정을 입시에 반영하는) 수시 입시제도를 채택하며 대입제도를 지속적으로 개편해왔지만, 어쩌면 본질적 마인드는 예전과 변하지 않은 (우리반, 우리학교 학생들을 더 좋은 대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채로 현재에 이르러 온 고등학교 교사들의 모습을 이 드라마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입시와 고등학교 교육은 이제 교육시장이라는 현실로 접근해야 한다.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경쟁과 선택을 어쩔 수 없는 암울한 현실의 관점에서 보기 보다 모순된 인간성 (defective human nature)을 고려했을 때 사회 속 모든 개인이 가장 큰 효용을 얻을 수 있는 이상적인 장치임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현실 속에서 교사가 판매자(대학교)와 구매자(고등학생) 사이에서 시장의 엄정한 관리자 역할 (수업과 평가에 있어서)을 수행하게 될 때에 만이, 그리고 학생, 학부모, 대학교가 그러한 교사의 중립성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게 될 때에 만이 공교육(특히 입시기관화 되어 버린 고등학교)이 독립된 자기완결적 교육기관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30여 년간 입시 제도 개선의 과정에 있어서 교육학자들과 정책가들이 명분으로 내세웠던 가치들 중 어느 하나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지난 입시제도들은 신뢰도의 상실과 불확실성 증가라는 비용을 현재 사회에 청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악의로 망치려고 했던 사람은 없다. 학생들이 원하는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학력시장의 존재에 대한 불가피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학생의 전인격적 교육 측면에서 바라볼 때 가장 요구되는 교육은,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 안의 내적 도덕 기준에 입각한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책임을 가지도록 하는 교육이다. 즉 경쟁 이전에 자신이 어떤 가치 (value)를 선택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왜 그 가치에 의미(meaning)를 두고자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개인(individual)이 되어야 한다. 이는 개인주의의 본질이기도 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청되는 부분은 – 민주시민의 자질을 강조하는 공허한 구호가 아닌 - 바로 학생 개인의 올바른 자립과 교사 개인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이다. 









자유기업원 <시민논객> 기고

등록: 20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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