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지나치게 적게 자고 학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막연한 불안감과 스트레스에 억눌려 있는 모습. 실제 교실에서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졸고 쉬는 시간엔 엎드려 자고 무기력한 모습이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할 때를 제외하고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
10대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일 순 있지만, 이것이 수면 부족과 공부에 대한 (구체적이지 않은) 막연한 불안감과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사실이 관찰된다. 공부를 스스로 하지 않으니,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스스로 재조직, 재구성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습 시간을 충실히 스스로 활용하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공부에 대해 막연히 어렵게 생각하는 근본 원인은 참고서에 의존하고 학원에 많은 시간을 빼앗겨 스스로 (텍스트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학습하는 시간이 부족해진 탓에 있다.
고3은 시간이 부족한 시기이다 (현실적으로 국영수 성적의 등급을 올리기에는). 욕심을 접고 시간이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1,2 때 목표했던 대학을 계속 고수하는 한에는) 남는 길은 재수하는 수밖에는 없기도 하다. 성적은 학생 개인의 근면성 뿐 아니라, 얼마나 자기 조절, 특히 마음 조절을 잘 해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한데, 결과에 집착하는 마음가짐은 스트레스를 초래해 뇌의 피로를 가중시키게 된다. 건강한 마음에서라야 생활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고3이라는 시간에 대해 주로 비현실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수시와 정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부족해 보인다. 수시 비중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내신 성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대학을 지망하여 수시 기회를 날려버리고 정시 지원 때 가서야 고3이라는 시간이 성적을 올리기엔 너무 짧았음을 깨닫는 모습을 보인다.
현행 교육부의 정책의 명분은 학교 생활과 수업에 충실한 학생이 보다 자신이 꿈을 이루는데 유리하도록 계속적으로 과정 중심 평가와 수시 입시 전형을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학생의 내신 성적으로 그들이 갈 수 있는 대학의 수준이 결정되는 상황이다. 단지 수시 전형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학생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수시 전형 제도의 사회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로 그 심각성을 논의해야할 필요가 있을 정도이다. 특히 서울의 상위권 대학의 경우 내신 만으로는 그들 대학이 선발하려는 우수 학생에 대한 변별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 관계로 학생부의 세부적인 내용을 입학생 선발과정에 중요한 근거로 반영하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에는 학생 개인의 사회문화적 환경이 매우 큰 변수로 작용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사회적 계층 고착화 내지는 학력의 세습화를 초래할 우려가 높다. 또한 이는 주관적인 인간 판단이 학생 선발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라는 더욱 본질적 문제를 야기한다. 애당초 인간이 인간을 판단할 수 있다는 (교사가 학생의 인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도 철학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해야 봐야할 문제이다.
어찌됐든 대부분의 중위권 학생들에게 수시는 내신이 결국 가장 핵심이며, 단지 내신 전형을 좀더 불투명하게 만든 것이 최근의 수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은, 내신이 자신이 없어서 논술이나 적성 혹은 정시에 희망을 거는 고3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본질은 자신이 받은 내신 등급보다 높은 대학들에 자신의 기대가 맞춰져서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수시에서 대부분 교과성적을 안보는 전형 (논술이나 적성)에 ‘그냥 응시나 해보는’ 수준으로 원서를 쓰는 상황이다. 재수생은 공부를 안해서, 갈 대학이 없어서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못받아들인, 욕심을 낮추지 못한 학생들이다. 전문대에 응시하지 않는 이상 정시는 재수생과의 경쟁 속에서 등급을 잘 받기가 매우 힘들며, 현실적으로 재학생들은 모의고사 때 받았던 성적보다 수능 등급이 대부분 떨어진다.
교육부의 정책은 과거에도 그래왔던 것처럼 지극히 이론적이고 이상주의적이다. 결국 교육부의 정책은 얼마나 '학교생활에 충실하였느냐'를 대학 입시의 기준으로 삼고자 하는 것인데, 사실 이런 의도에 가장 합치되는 입시제도는 성적으로 줄 세우는 시험 위주의 선발이다. 왜냐하면 그런 시험이야 말로 오히려 가장 공평하고 신뢰도 있는, 그럼으로 인해 사실상 가장 효과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교사가 학생의 '학교 생활 충실성'을 소신있게 객관적으로 정성적 판단(qualitative assessment)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실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사 (교장에서 담임교사에 이르기까지)들은 학생과 학부모의 인생을 망친다는 비난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 그들이 대학에 가는데 기여하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그들을 평가하는 역할보다 우선시 된다.
교육부와 달리 수시입시 제도를 통해 대학은 전공적합성 등을 평가하여 학생이 자신들 대학에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할 학생인지를 미리 예상하여 그 예상에 입각해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어쨌건, 결국 수시에서 가장 성공확률이 높은 학생의 케이스는 내신이 다른 지원자보다 높으면서도 자신이 지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대해 높은 관심과 의욕을 보이는 (자소서의 내용이 일관되게 지원하는 대학과 학과와 연관되는) 학생이다. 자소서는 대학에 진학해서 자신이 지원한 학과를 열심히 공부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의지는 일관된 관심으로 학생부에서 나타나게 되며 자소서에서 이런 부분을 적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봤을때 그러한 '일관된 관심'을 유동적인 인간의 삶에 기대하는 것도 무리라 볼 수 있다. J. R. Tolkien의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변덕은 (호빗이나 엘프족과 구별되는) 인간의 본질이다. 특히나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기에 고등학교 3년간 생각이 변하지 않고 일관된 목표를 추구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매우 고집스럽거나 생각 자체를 별로 하지 않고 살았다고 하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은 보다 열정적으로 문제 해결에 매진하거나 혁신적인 지식에 자주 맞닥드리면서 사고가 더 왕성해지고 생각이 더 자주 바뀌며 그 과정에서 이전 자신의 사고를 얽어매던 껍질을 탈피하는 과정 (내적 충격)을 보다 빈번히 겪게 된다. 반면, 아무 생각없이 주변 친구들과 잡담으로 소일하며 살았다면 목표나 생각이 변할 이유가 딱히 있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생에서의 일관성은, 생각이나 목표가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생각과 목표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일관된 자아를 추구해나갈 때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문제로서, 대학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학의 본질은 졸업장을 판매하는 학력 시장의 판매자일 뿐이며, 학생은 그 구매자일 뿐이다. 어떠한 종류의 시장이든, 시장의 본질은 가치와 선택에 있다. 대학이 마치 시장의 원리에 벗어나 존재하는 듯한 착각은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사회적으로 쌓아올려진 '이미지'와 가격 결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시장에서는 구매자도 물건의 가치를 따지며 선택하지만, 판매자도 구매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판매자가 구매자를 선택하는 기제가 바로 가격이다. 기여입학제와 같은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대학 등록금과 대학 졸업장의 그 가격은 어느 대학이든 대동소이한 셈이므로, 판매자들 (대학들)은 가격 외에 다른 방식으로 구매자를 까다롭게 선택한다. 바로 그 선택의 방식이 정시와 수시이다. 하지만, 본질은 대학은 학력시장에서의 판매자라는 사실이고 학생은 그 구매자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대학교와 학생의 사이에서 교사의 역할인데, 현실에서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사들은 흔히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선택받는 측면에는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반면에, 구매자가 판매자를 선택하는 측면에는 소홀히 하는 (단순히 학생의 성적을 맞추어, 혹은 경쟁률을 고려하여, 대학과 학과를 지원하도록 지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20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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