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립학교 중등 교사의 입장으로 한국의 사교육과 공교육의 본질과 문제점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중등 교육은 최근 입시 제도와 관련해서 수시와 정시를 놓고 사회 대중 뿐 아니라 교육계 안에서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의 주장이 갈등을 빚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 20여년간 대입 제도가 계속 변화되어 수시 비중이 아주 커져 있는 상황에서 학교 교사의 시각에서 보면 과연 누구를 위한 입시 제도 변화였는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한국사회에 특징적인 학력 시장의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주의적 교육철학의 방향으로 제도를 자꾸만 변화시켜 온 모습이라고 보입니다.
그 외에도 무상 급식 이래로 중등교육은 무상교육, 의무교육의 방향으로 달려와 이제 그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최근에는 학생에 대한 민주시민 교육 강화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편향된 사회관에 기초한 이상주의적 교육 행정 및 교육철학의 방향은 갈수록 강화되어왔습니다. 그 결과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그저 내신과 생활기록부 관리를 위한 공간으로 인식하는 괴이한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일부 정치 집단과 언론에서는 사립유치원을 마치 비리의 온상으로 몰아오면서, 회계비리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 즉 사인(私人)이설립해 운영 중인 대다수 사립유치원을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 왔습니니다. 저는 유치원 교육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을 개인의 의지나 계획과 관계 없이 법인화로 강제 전환하는 방향의 최근의 정부 시도도 결국 또 하나의 이상주의적 교육 정책의 한 일환으로 보입니다.
저는 역사교사이므로 유치원 설립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한번 의료계와 비교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의료법의 경우 1973년 의료법 개정 당시 한국에서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의료법인만이 가능하게 되었었습니다. 의료인들의 엄청난 반발이 있었지만 강제된 법에 그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후의 의료법 개정으로 현재는 그러한 조항은 사라졌습니다.
사립 유치원을 그렇게 70년대 유신 시절처럼 강제로 법인으로만 개설 자격을 제한하는 법개정은 설마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방역에서도 볼 수 있듯, 최근 한국의 정책 흐름 자체가 점점 국가의 개입과 강제가 개인의 자율성과 권리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걱정되기도 합니다.
의료기관의 역사성, 즉 한국 사회에서 의료기관 개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의료법을 앞세운 정부에 의한 획일적인 의료정책이 문제가 되었듯, 사립 유치원이 한국의 유아교육의 역사에서 의미, 즉 사립유치원의 개설과 운영이 가지는 한국 사회에서의 역사성을 무시하고 현재의 시각에서 다분이 이상적 기준을 정부가 현실의 유아교육 기관들에 강제한다면 이 역시 문제가 크리라 생각됩니다.
현실에 대해 정(正)과사(邪), 즉 올바르고 사악하고의 이분법적 기준을 강제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한 시각입니다. 역사적 시각에서 보면 매 시대마다 그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떠한 사회적 기관들이 개설되고 그 소임과 사명을 다했다면 그 사회적 의미에 대해 역사성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비추어 현재의 존재에 나름의 가치 부여를 해야 합니다.
과거와의 단절은 기관의 역사성과 전통의 부재를 초래하게 됩니다. 영국처럼 사회적 기관 (social institution)의 긴 역사를 보유하고 각 기관들의 독자적인 전통이 살아 숨쉬는 나라들은 이러한, 과거와의 단절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가 극히 조심해온 전력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사립 유치원들에 대해서도 유아교육 시장에서 일부에 나타나는 부족한 점들을 문제 삼아 정부가 지나치게 이를 획일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리라 예상됩니다. 유치원 교육 전체를 정부의 회계 기준을 들이대며 법인화의 틀로 사실상 국가적 통제를 가하려는 시도가 그러한 대표적인 예라고 보여집니다.
아무쪼록 사립유치원 문제가 현재의 중등교육이 겪고 있는 이상주의적 교육행정 및 교육철학의 폐단을 예방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개별 사립 기관들의 독립성이 유지되고 유치원 시장의 경쟁이 정부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작성: 2022.1.20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세미나 <신바람 나는 유치원 교육환경 조성 토론회> 원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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