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 공보의 시절, 공공의료 사업을 지켜본 나는 그 비효율성과 전시행정 실체 알게 돼
-공공의료를 민간의료와 분리, 의료 공공성을 분절적·환원론적으로 접근하는 자체가 무리 있어
-논리적 성찰과 비판적 사고 없이는, 아무리 맑은 영혼과 높은 교양을 가져도 진영 논리에 매몰돼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건치)라는 단체가 있다.
내가 치대 다니던 시절 무척 관심이 많았던 단체였고, 이후에 공중보건의사를 하면서 자연히 건치에서 하는 여러 사업들에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 보고자 시도한 적도 있었다.
더우기 내가 공보의를 하던 시절은 막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정 갈등 사태가 나타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많은 젊은 의사들이 사회적 시각을 새로이 갖추어 나가던 때이기도 했다.
(아래: 어느 구강보건 관련 웹사이트에 건치 활동에 대한 소개를 위해 남긴 나의 글)
공보의 2년차 시절 김포시 보건소에서 근무하던 나는 그 근방에서 일하시는 개원의 선생님들과도 자연히 몇차례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김포시 치과의사회에서는 당시 장애인 치과 봉사 사업을 시 보건소와 연계하여 시행하고 있었고 정기적으로 개원 의사들이 보건소에 찾아와서 봉사를 하였다.
나 역시 보건소 치과에서 일하면서 환자를 보는 것과 별도로 당시 김포시에서 몇차례 공청회 토론을 열기도 했던 수도물 불소화 추진계획 등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였다. 당시 이 계획은 시청에서 나서지 않고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 단체에서 적극 주도하고 있었지만, 시민 단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이런 장애인 치과 봉사나 수도물 불소화 계획에 관심을 갖고 참여한 개원의 의사들 중에는 건치 회원이 적지 않았다.
그 해 보건복지부에선 치과 분야에 전국적인 공공 사업 하나를 새로이 시작하고 있었는데 아동에 대한 치과 실란트 사업이었다. 예방치과 치료의 일환으로 실시된 공공의료 사업이었는데, 시보건소에서 근무하던 나는 자연히 그 사업을 일선에서 맡아 시행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예방치과와 공공의료에 관심을 많았던 나는 직접 보건복지부 구강 보건과 사무관에게 그 사업 초기에 나타난 시행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이메일로 적어 보내기도 했다 (아래).
안녕하십니까.
경기도 김포시 보건소에 근무하는 치과 공보의 배민 입니다.
업무에 많이 바쁘시겠습니다만, 무척 중요한 일이라 생각되어 글을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요며칠 보건소내에 치과를 중심으로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올해 전국적인 단위로 실시되는 구강보건사업인 치아홈메우기와 노인의치 사업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업의 취지와 목적에는 백분 공감합니다만, 문제는 이러한 사업들이 일선 시도를 거쳐 일선 시군으로 일이 내려오는 과정에서 엄청난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례로 보건복지부의 2002년 치아 홈메우기 사업 지침을 참고하거나 그 동안의 구강보건사업의 일련의 발전과정을 고려해볼 때 일차적인 사업의 목적은 농어촌 지역과 도시 빈곤층 아동의 실란트 시술혜택이 되어야 할 것이고 또 그렇게 당초 시작되었던 것으로 알고 지지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희 경기도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도 보건과에서 일선 시군의 형편이나 의견을 전혀 고려할 생각을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이 할당 받은 사업량을 각 시군에 강제적으로 배분 처리해놓고 강행할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김포시의 경우 도농 복합 형태의 시로 공보의는 고작 4명 배치되어 5개 면에 있던 보건지소의 치과도 폐지되고 치과공보의 배치가 그 실용성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에서 김포 1,2,3 동의 시민(도시지역 주민이라 봐야함, 대개가 아파트 주민이며 아주 가까운 곳에 치과가 모두 개설되 있는 실정)까지 사업량의 대상에 도보건과에서 일률적으로 포함시켜 사업강행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보건복지부 사업지침상의 순위 대상자 상의 "농어촌 지역과 도시지역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 및 차상위계층" 주민 우선 방침에도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지침상에 괄호안에 들어있는 공중보건의 배치지역/미배치지역 구분만으로 행정편의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일선 시군의 다양하고 현실적인 형편이나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선 시도 보건과에서는 일방통행식으로 무리하게 사업량하달, 사업시행독려의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며칠 구강보건사업에 대한 전문성이 전연 결여되어 있는 도보건과에 의해 비능률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올해 복지부 사업 시행의 일련의 과정을 이런 식으로 대하게 되면서 정말 우려와 걱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저희 보건소를 비롯한 공보의 배치지역의 수많은 시군 지역은 이러한 타당성과 현실성, 합목적성이 결여된 사업추진방식에 의해 올 한해 심각한 업무마비와 업무 지장이 초래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일선 시도 및 시군 등의 지방자치단체에선 올해 지방자치 선거를 앞두고 정략적인 이용으로 선심성 행정으로의 변질을 노정할 것이 뻔해 보이는 상황에서 더이상 좌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식의 일 추진이라면 일선 시군단위 보건소에서도 대량 민원이 올 한해 바람 잘 날 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도 매우 우려되는 사실입니다.
이에 저는 보건복지부 구강보건과 사무관님을 통하여 간곡히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이러한 좋은 목적의, 건치를 비롯한 치과선생님들의 노력과 땀으로 얻은 구강보건사업 시행의 열매가 비합리, 비능률, 정략적 목적에 이용됨으로써 이 사업에 기대를 갖고 있었던 많은 치과의사들, 공보의들에게 절망감을 던져주고 있으며 보건복지부로 부터 등을 돌리게 될 것이 예상되고 있음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일반 국민들에게도 비합리적인 기대를 통해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며, 일선 보건소를 비롯한 공공의료기관의 업무지장과 혼선을 일으키고 더 나아가 민간의료기관과의 갈등을 초래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보건복지부 구강보건과에서는 일선 시도에 공문으로 권고를 해주시길 요청드립니다.
즉 일선 시군에서 자체적으로 올해 사업 시행을 추진할 수 있도록 중앙과 일선 시도에서는 지원과 보조를 행하는데 그쳐야 하며, 현재와 같은 일선 시군에 대한 강제적인 사업배분과 강압, 독려 분위기가 해당 시군에 대한 업무 부담과 구속으로 작용해 일선 기관의 업무 지장 및 마비를 초래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합니다.
아울러 일부 시군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던 장애인 사업 등 여러 다양한 구강보건사업 등에 자생능력을 고갈시키고, 적어도 발목을 잡는 우를 범치말도록 일선 시군에서 자율적으로 구강보건 목적의 테두리 안에서 예산을 자율적이고 현실적, 합리적으로 결정 및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이상의 권고에 대하여 전향적으로 검토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김포시 공중보건의사 배민
이때는 공보의 시절이니 아직 내가 사회주의자로 살던 시절이었다. 영국과 같은 의료 사회주의의 실현 뿐 아니라 소위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에 반대하는 마인드로 여러 공공부문 민영화에 반대하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공공의료에 몸담고 있으면서 공공의료 사업을 가까이서 지켜보게된 당시의 나는 위에 적은 글처럼 그 비효율성과 전시행정의 실체를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그 당시의 내 생각이 사회주의적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내가 사회주의라는 창살 없는 사고의 감옥을 완전히 깨뜨리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공보의를 제대한 후 경제학 (특히 그레고리 멘큐 교수의 경제학 책) 공부와 개인주의(특히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대한 각성에 기인했다.
우파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는 지금의 내 시각에서는 그저 진영논리에 빠져 상대를 공격할 뿐 자신이 누군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우파 사람들도 많이 보게 된다. 좌파 정치인을 공격하고 좌파 정당을 비판한다고 그 사람이 결코 자유주의와 시장의 가치에 대해 각성한 개인주의자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최근에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지만, 나는 공공의료를 따로 민간의료와 분리시켜 의료의 공공성을 분절적으로, 환원론적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한국의 좌파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처럼, 공공의료는 선한가? 그렇다면 민간의료는 선하지 않은가?
사회주의적, 환원론적 시각의 노예로 많은 한국인들은 2020년 현재 살아가고 있다.
지식의 단순 소비와 가식적 토론이 아닌, 자신의 사고를 구성하는 지식의 근본 토대에 대한 겸손한 성찰과 비판적인 사고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맑은 영혼과 높은 교양을 가져도 진영논리에 매몰돼 자신이 '옳고 선'하다고 생각하며 살게 된다.
자신이 옳고 선하면 자신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옳지 않고 선하지 않은 것인가?
만약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것은 배타적인 것이고 만약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하면 그것은 가식적인 것이다 (사실 인간의 대부분의 대화와 토론은 가식적이기도 하며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애당초 당신은 옳고 선한 생각이 아닌 그저 왼쪽 혹은 오른 쪽의 어느 지점에 위치한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제3의길 기고: 제3의길 109호 [2020년 9월 16일] 게재 기사
해당 기사 링크: http://road3.kr/?p=36780&cat=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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