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인터넷에서 내가 2013년에 냈던 책이 인용된 논문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2018년에 <시민교육연구>라는 학술지에 실린 최종덕의 "개인주의와 시민교육의 방향"이라는 논문이었다.
그 논문을 읽어 보진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열람할 수 있는 논문 서론의 앞 부분 (첨부 파일)에서 나의 책은 아주 짧막하게 저자, 연도만 본문 내용에 인용되어 있었다.
"... 그러나 교육 현장의 현실은 집단의 가치나 집단주의적 사고가 강조되고 개인의 자율이나 개인주의적 사고는 종종 이기주의와 동일시된 채 교육의 우선순위에서 밀 려나고 있다(김주성, 1997; 문지영, 2009; 손경애 외, 2010). 이러한 교육의 결과, 우 리의 의식은 집단주의에 사로잡혀 건강한 개인/시민이 되지 못하고, 아직도 집단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개인보다 집단 그 자체에 보다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러한 집 단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한 개인의 자율성과 윤리적 책임은 집단적 가치 속에 함몰 되고 바람직한 개인/시민은 태어날 수 없다. 그렇게 한국 사회에 형성된 집단주의는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의 문화, 연고주의와 집단이기주의, 개인적 정체성보다 집단적 정체성 우위의 문화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박상용, 2017; 배민, 2013; 정지우, 2014; 최종덕, 2011)."
사실 2013년에 출판된 나의 책 <우리 안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엄밀하게 학문적 기준으로 말하면 전문 학술서보다는 대중서에 가까운 책이었기 때문에,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아직 학자로서의 길을 걷기도 전에 썼던 책을 인용해준 데 대한 저자로서의 고마운 마음이 더 많이 들었다. 마치 내 가게를 오픈도 하기 전에 방문해 물건을 예매해주고 가신 고객을 보는 느낌이랄까.
지금은 의학사 분야에 논문을 쓰기 시작한 연구자이긴 하지만, 내가 연구한 내용을 인용한 다른 연구자의 글은 아직 1편 밖에 보지 못했다. 작년에 History and Philosophy of the Life Sciences에서 출판된 나의 논문이었는데 독일의 Medizin historisches Journal 이라는 저널에 실린 한 논문에 올해 인용되었다 (reference 부분: 첨부 파일). 인용해준 논문 저자인 Igor J. Polianski 씨에게도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마치 내 가게를 오픈하고 찾아온 첫 손님을 맞이하는 기분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 얘기하길, (아마도 Jordan Peterson이었던 것같다) 전세계적으로 publish된 수없이 많은 논문들 중 오직 소수 만이 1회 이상 인용되며 그 소수 중에서 또 극소수의 논문들이 실제로 한 해 논문 인용 총 횟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했는데 (아마도 피터슨 교수가 자주 언급하는 파레토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들었던 예시였던 것같다), 적어도 내가 낸 논문 중 하나는 극소수는 아니지만 소수에는 들어가는 논문이 된 셈이다.
내가 살아 가는 동안 내 생각을, 내 연구를, 내 글을 과연 몇명이 얼마나 인용하게 될까?
누군가 나에게 예전에 굳이 뭐하러 그렇게 책을 쓰고 공부를 하느냐고 (그런 거 하지 않아도 인생은 살아가기 바쁜데) 물었던 적이 있었다. 사실 내 주변에 내가 쓴 책에 대해서, 내 공부에 대해서, 내 생각에 대해서 거의 얘기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보면 그런 질문은 당연하게 내가 받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reference로 삼아서 자신의 생각을 만들고 자신의 연구를 발전시키고 자신의 글을 완성해가고 있다는 생각은 다른 무엇보다도 연구자로서의 내 삶에 대해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지만) 작지만 소중한 의미를 안겨다 준다.
결국 인생에 남는 것은 의미 (meaning)이니까.
이렇게 사는 것을 택한 나의 결정도 뭐 나쁘진 않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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