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12월 7일)에 서울대 의대 융합관에서 제7회 일산 포럼이 열렸다.
일산포럼은 서울대 인문의학 교실에서 주관하는 의학사와 인문의학 관련 정례 발표회 행사인데, 이번엔 "731부대: 끝나지 않은 역사, 이루어지지 않은 정의"라는 주제로, 발표자들의 발표가 끝날 때 마다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첫번째 발표자는 서울대 인문의학과 조교로 있는 정준호씨의 "일본군 세균전과 전후처리"라는 주제의 발표였다.
두번째 발표는 인하대에서 박사과정 중인 일본인 "하세가와 사오리"씨의 발표였고 주제는 "731부대와 한반도/조선반도"였다.
세번째 발표는 사오리 씨의 지도교수인 인하대 의료인문학 최규진 교수의 "한국에서 731부대 연구하기"였다.
마지막 네번째 발표는 나의 석사과정 지도교수였던 서울대 인문의학 김옥주 교수의 "재판과 역사학: 일본에서의 731부대 관련 재판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발표였다.
김옥주 교수의 발표 내용은 일본 역사가 마츠무라 타카오의 '재판과 역사학'이라는 책의 역사적 의미를 소상하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731부대 주제 연구에 대한 일본의 엄정한 scholarship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얘기하는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히 최근에 자신의 석박사 논문 표절의혹 관련 조사를 받고 있는 조국 교수와 적나라한 대비가 되었다.
네 분의 발표를 들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2차대전 세균전 부대의 연구는 오늘 최규진 교수와 하세가와 사오리 씨의 연구가 보여주듯, 당시 한국인과의 연관성과 관련해서 앞으로 더 엄밀하게 진행되어야할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하지만 이런 연구가 사회적 쟁점이 될 때에 기존의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와 함께 또 하나의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정치외교적 이슈가 될 것 같아 보여 우려가 들기도 했다.
이슈화에 경제적 유인을 가지는 언론, 그런 이슈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할 유인을 가지는 직업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에게 선동되어 그런 정치적 이슈들을 소비하는 주체인 대중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은 매우 높은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그러한 선동이 이제는 '사회적 각성'으로 둔갑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대중은 세뇌당하면서도 자신들이 "깨시민"이라는 착각 속에서 오히려 더 비장해지고 더 열정에 충만해져 가고 있다.
사실 인간을 생체실험하는 잔인한 비인간성은 지금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다.
파룬궁을 따르는 많은 중국인들은 중국 공안 당국에 붙잡혀 감금된 후 장기 매매를 위한 적출 대상으로 이용되어 왔다. 캐나다, 미국을 위시해서 많은 서방 국가들이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제기하였으나, 대한민국에서 그 어느 정치인 혹은 사회단체도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저 오다가다 길거리에서 파룬궁 신도에 대한 잔악 행위 관련 포스터를 개시하고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시민들을 본 적이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깨시민의 시야는 정치적으로 특정한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날 포럼에서 김옥주 교수와 황상익 교수 사이에 오고간 역사 재판과 역사가의 역할에 대한 질의 응답 역시도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일본에서 마츠무라 타가오 교수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법정에서 재판관의 역사적 시각을 전환하기 위해 애쓴 노력에 대해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재판으로 역사 정의를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매우 위험성을 잉태하기도 한다. 일단 재판을 통해 특정 역사적 시각이 정의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후엔 다른 역사적 접근은 부정한 혹은 해로운 시각으로 재단되고 그 정의로운 역사적 시각은 기득권의 지위에 서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무엇이 정의로운 역사인가를 재판을 통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 다양한 시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접근에 대해 늘 열려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 날도 황상익 교수가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소송 사건을 예로 들어 개인의 정치사회적 시각을 법정에서 명예훼손 건으로 심판하는 사안의 위험성을 얘기했는데, 이는 정치적으로 우파 정치인과 지식인들에게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안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한민국 현대사의 5.18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전두환의 책은 출판 금지를 받았으며, 지만원의 경우는 그가 겪은 고초는 차치하고서라도 5.18 사건에 대해 그가 한 연구를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국회의원 조차 신분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다. 둘 모두에게 한국 사회는 그럴 듯한 이유와 명분을 가지고 그들의 생각을 억압하고 있다. 그 이유와 명분은 말 그대로 그럴듯해 보일 뿐이다.
'민주화'라는 패러다임과 프레임으로 정치사의 많은 사건을 이미 재판을 통해 누가 정의인지 누가 부정인지 확정해버린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재판이었는가 우리는 다시금 우리 자신에게 되물어야 하는 시점을 언젠가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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