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에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1887 - 1961)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책을 편찬했다.
물론 그는 생물학자가 아닌 물리학자이다.
그는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을 통해 물리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물리학의 대가였다.
그런 그가 1943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에 와서 대중을 상대로 강연한 주제는 물리학이 아닌, '생명이란 무엇인가'였다.
그는 생명 현상을 분자적으로, 즉 원자들의 공유결합으로 설명함으로써 염색체를 통한 형질 유전의 본질을 밝히고자 하였다.
바야흐로 생물학은 19세기를 거치며 라마르크와 다윈 등을 통해 어렵사리 구축된 역사적, 경험론적, 생물학 고유의 독자적 철학에 의존하려 했던 시대를 벗어나서 다시 갈릴레오와 뉴턴, 데카르트 등이 구축한 기계론적, 환원론적 세계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DNA 구조 발견의 쾌거와 함께 했던 이러한 20세기 중반 생물학과 의학 전반에 걸친 환원론적 열풍에는 슈뢰딩거도 기여한 바가 컸다.*
바로 물리학자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촉발시킨 생물학에 대한 근원적 논쟁에 다양한 과학 분야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뛰어들었던 현상이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어떤 학문이든, 어떤 분야든 그 분야의 고루한 시각을 온존시키는 폐쇄성을 극복할 때에 만이 그 분야의 진정한 발달이 이루어질 수 있다.
보다 열린 시각은 자신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며 보다 진정한 성찰을 가능케 한다.
어쩌다 보니 다음 주에 유아교육에 관한 토론에 참가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유치원 교육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다.
책의 저자인 김정호 교수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하지만 경제학의 눈으로 교육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오래 전부터 깊이 깨달은 바 있다.
이는 단순히 예산과 비용에 관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학은 행복에 관한 가장 본질적인 학문이다.
경제학적 시각은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교육학 이론들보다 교육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문제 제기를 하게 만든다.
특히 김정호 교수는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을 담은 글을 지속적으로 써온 대표적인 경제학자이다.
나 역시 최근 출간한 책에서 한국의 교육 시장을 개인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본 글을 적었던 터라 교수님의 토론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가 분석한 유아교육의 문제와 해법은 중등교육의 현장에서 내가 느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데에도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다.
책소개
제목: 맘이 선택케 하라
저자: 김정호
출판사: 비비트리북스
출판일: 2021.11.26
* 20세기 중반 생물학의 환원론적 경향에 대한 당대의 대표적인 두 시각을 보여주는 책은 다음과 같다.
David Hull (1935 – 2010)의 <생명과학철학(1974)>: 멘델유전학이 분자유전학으로 환원되었다는 시각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물리적 환원과 이론적 환원 모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는 책.
Jacques Monod (1910-1976)의 <우연과 필연(1970)>: 20세기 과학의 환원론적 시각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생물학적 환원론의 시각을 지식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실천을 위한 가치와 윤리의 차원으로 발전시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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