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단하고 자신과의 싸움은 어찌보면 인생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의학사를 공부하면서 내가 연구했던 주제 중 하나가 19세기 영국의 어느 의사의 분투 (자신의 이론을 전파하려는 노력)를 담은 내용이었다.
그랬기에 자연히 지난 3년 간의 코로나 상황에서 주류의 목소리에 대항하는 일부 의사들의 주장과 그들의 분투에 관심을 기울였었다.
나 역시 의학 역사적 시각으로 코로나 사태를 바라보았었기에 2020년부터 꾸준히 관련 칼럼을 인터넷 매체에 기고를 했었다.
그런 와중에 인천에서 한의사로 개업하고 계시고 <코로나 미스터리>라는 책을 낸 김상수 선생님을알게 되었고,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면서 코로나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나눌 수 있었다.
지난 달에는 경북대 의대 예방의학 교실에서 일하시는 이덕희 교수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만났던 날 전날이 교수님의 신간이 발행된 날이기도 했다.
신간의 제목은 <K-방역은 왜 독이 든 성배가 되었나>로 '한 역학자의 코로나 난중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었다.
하지만 그 날 대화에서 더 중요하게 이야기되었던 주제는 교수님의 전작 <호메시스>였다.
그 책의 내용에서 핵심은 우리가 노출된 환경으로부터 받아들이는 다양한 생화학적 자극들 속에서 우리 몸은 계속적으로 그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당연하게 들릴 수도 있는 주장이지만, 특히 현대의 오염된 환경에서는 그 다양한 생화학적 자극들이 결코 우리 몸의 자연적인 대응 노력으로 적응해나가기 쉽지 않은 자극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진다.
가령 비만을 초래하는 생화학적 자극은 우리가 단순히 많이 먹는 것과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우리 몸의 비만을 초래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분절적으로 이해하는 현대 과학의 시도에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나로서는 예전부터 깊이 생각해왔던 주제이기도 하기에 많은 부분 공감이 갔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그들이 분석한 부분들에 대한 지식이 전체가 보여주는 현상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전체가 보여주는 현상들은 늘 그렇듯 부분들의 메커니즘의 총합으로 설명하기 힘든 특징을 가진다. 즉 한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자극은 시간이 가면서 각 부분들 간의 장기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관계의 변화로 말미암아 전체적인 현상이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자극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데, 사람들은 이를 그저 부작용이라는 이름으로 단순화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어떤 약을 먹었을 때 그 약이 수면을 초래하는 부작용이 있다면 이를 감안하여 처방하는 약에 각성 효과를 내는 약을 함께 포함시킨다거나, 또 다른 약을 먹을 때 그 약이 소화가 안되는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을 감안하여 소화제 효과를 내는 약을 함께 포함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인체의 생리 현상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하고 예측할 순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인슐린이라는 인간의 몸에서 기능하는 하나의 호르몬의 작용에 대해 임상의사들과 기초 의학자들은 예전에 알지 못했던 많은 기능과 효과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가지게 되면서 당뇨와 인슐린과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마저도 과연 인간이 자신의 몸에 대해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했다고 보긴 힘들 것이다.
즉, 우리는 (의사와 과학자를 포함하여) "아직 잘 모른다."
우리가 현재 부작용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지식조차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전체적 현상의 극히 한 단면일 뿐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짧은 지식으로 수많은 착오를 우리 자신의 몸에 시행해온 의학의 역사는 현대 의학이라고 절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 그러한 생각으로 현대 의학의 테두리 안에서 분투하는 의학자들을 보게 된다.
지난 달에 만난 이덕희 교수도 바로 그런 의학자 중의 한 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 역시도 좀더 분발해서 열심히 분투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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